원문보기 http://webzine.nrf.re.kr/nrf_1110/index.html
<대중과 과학계의 만남의 장, 과학전용방송국을 기다리며>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 교실 조남훈 교수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TV를 켜면 오전에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눈높이로 과학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고, 오후에는 학생들이 겨루는 과학퀴즈 아카데미가, 저녁에는 실험실에서 땀흘리는 과학도들간 갈등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와 ‘장영실’의 일생을 다룬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연속 방영되고 밤에는 과학주제 시사토론이 열리는 과학전용 채널이 있다면…. 일명 SBN(Science Broadcasting Network)의 창립이다. 발명가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과학자의 발자취를 찾아서’ 혹은 연구원들의 희로애락을 조명하는 연구실 탐방취재, 노벨상에 가려진 ‘2인자의 비애’를 다룬 비화,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조명하는 기획 프로그램 등이 편성되고… 게다가 주말에는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인체 내의 신비로운 탐험을 소재로 한 이너스페이스 같은 공상과학영화를 방영해 주고… 이런 채널이 있다면 쇼와 오락에 all-in하는 전 국민의 열풍이 그래도 조금은 가라앉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 이런 생각도 해본다. 어·육류나 식물 조직에서 DNA도 추출해보고 전기영동까지도 직접 해볼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진 교육현장에서 ‘유전자’ 수업을 한다면… 과학이라는 과목이 좀 더 쉽고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을는지. 이런 체험학습이 자리를 잡으면 장차 어린 과학자들의 잠재적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들의 교육에 과학이 주는 꿈의 위대성과 효과를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이따금씩 기획전시가 있으면 부모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행사장에 가보지만 대부분은 한계를 느끼고 오기 마련이다. 시간이 흘러 중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면 박물관은 가보나마나 뻔한 곳으로 인식하고 건성으로 다녀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박물관으로부터 배우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입시 학원을 하나라도 더 가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들이다. 아무리 바빠도 학생들은 대중스타가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장은 가고 싶어 하는데 과학도 그렇게 보고 싶어 안달이 나게 할 수는 없을까? 그 정도는 아니라도 미술, 음악처럼 갤러리나 공연장에서 원하면 언제나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대중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볼 때 이제는 우리나라에 체계적 학습에 필요한 보충자료를 접할 수 있는 범 과학박물관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현재도 주요 도시들에 과학상설박물관이 있기는 하지만 선진국의 과학박물관과는 아직 그 규모나 수준에서 거리가 있다. 과학은 공룡모형이나 암석과 우주행성을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서 수학과 공학, 컴퓨터, 생명과학도 전시의 한 축이 되어야 하며 장르마다 3D 영상의 구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이런 박물관은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서 막대한 투자를 하여 장기적 안목으로 많은 자료를 모아서 전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의학을 예를 들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의학박물관은 주요 의과대학에 존재하지만 대부분 공통적으로 인체해부도와 오래전 시술하던 수술기구 중심의 전시물로 이루어져 있다. 질병중심의 기전과 현상을 이해하도록 좀 더 친절히 보여주고 도와주고 흥미를 돋우는 과학적 사고가 바탕이 된 의학박물관이 만들어진다면 의학을 막연히 동경하는 학생들에게도 올바른 정보를 줌으로써 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으련만.. 너무도 많은 분야가 세분화된 요즘 세세한 전공분야는 대학 자체적으로 소규모라도 특정분야의 ‘과학 갤러리’를 만들도록 모두 노력해야 한다. 장래를 결정하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갤러리나 박물관탐방이 의외로 꿈의 확신을 주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학 속에 담긴 진짜 매력을 찾아 쉽게 어린 새싹의 미래를 꿈틀거리게 하는 방법을 정부와 전문가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SNS가 발달하는 요즘 실험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행과 결과도 과학 웹진과 유사한 칼럼이나 웹 전용사이트가 새로이 개설될 필요가 있다. 한편 과학계통의 분과학술지도 ‘뉴튼’ 같은 아틀라스 해도같이 대중 눈높이에 맞추어 만들어진 좀 더 친숙한 월간지 간행도 필요하다.
과학의 전문분야 홍보는 원칙적으로 해당 학회의 발표와 학술지 논문으로 알려야 하지만, 대중적 버전으로 일반인이 접하는 대중매체 상설칼럼에도 소개하고, 흥미로운 소재를 발굴하여 알려주면 과학침체기 분위기는 분명히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과학은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그렇듯이 하나의 성공사례 발굴을 위해 수없이 버려진 99%의 실패담을 극복하는 데서 더 많은 교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예능이 대세이지만 화려한 성공사례만 보여주기보다는 치열한 훈련시절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더욱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것처럼 누구든지 노력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과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단 대중에게 소개할만한 가치를 가진 내용인지를 정확히 객관적으로 판단하되 과대포장하지 않는 사실적 접근이 과학에서는 특히 매우 중요하다.
어렵고 전문적인 기초과학의 연구결과를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에게 설명하고 흥미를 유도하는 발상은 처음부터 무리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격차를 인정하여 아무 노력을 안 한다면 점차 대중과의 벽이 높아지고 결국 현재, 아니 미래에도 과학을 전공하려는 인재들이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많은 학생들의 진로가 우회되어 과학한국은 점차 멀어질 뿐이다. 과학한국이라고 하는 슬로건은 절대 말로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련만 우리는 초기 교육부터 시각적이고 체험적이어야 할 과학교육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청각적 방법에 전적으로 의존해오고 있다. 노벨상은 우수한 개인으로부터 나오던 20세기와 달리 21세기는 국가가 만들어 내고, 그 준비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한 투자와 바른 정보의 기회노출로 달성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연구재단에서 2011 기초연구 우수성과 50선을 선정하여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여러 가지 노력을 보면서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과학계와 대중의 만남이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 글은 한국연구재단의 의견 및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